by Jimbba Jayz
보존해야 할 공간, 춘천양조장
2000년대를 전후해 지어진 듯한 아파트 인근, 꽤 넓은 대지를 차지한 오래된 단층 짜리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그곳이 세월이 스며든 양조장임을 직감했다. 춘천양조장은 1968년에 설립된 양조장이다. 춘천지역 9개 양조장을 통합해 춘천합동주조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이후 춘천보문주조라는 이름을 거쳐 춘천양조장의 이름을 갖게 됐다. 서너 개의 건물이 성기게 배치된 이곳은 각 건물마다 별도 등기가 있다고 한다. 대지가 워낙 넓어 새로운 건물로 탈바꿈시킬 법도 한데 사장님은 대쪽 같이 No! 땅을 재개발해 건물을 높게 올리면 돈은 벌 수 있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지 못한 이유에서다. 반면 술을 빚어 제공하면 술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이 담겼기 때문.
바글바글 했던 옛 양조장의 풍경
현재는 두 명의 경영진과 세 명의 직원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과거엔 직원이 50명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건물 지하에 구내식당을 마련했으랴.
현재 공장장은 19살에 입사해 지금까지 50년의 경력을 자랑한다. 현 경영진이 2012년 이곳을 인수했는데, 그만두고 쉰다는 공장장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늘어졌고 그 인연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익숙했던 술도가의 모습
경영진은 춘천양조장을 인수하기 전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사장님은 유통업에 종사했고 전무님은 은행원으로 평생 일했다고. 그렇다면 왜 술을 빚는 데 관심을 가졌을까? 사장님의 어머님이 하동 정씨 일가인데, 어린 시절 가양주를 빚던 모습을 봐왔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와의 추억을 자연스레 술도가를 차리는 길로 안내했다.
호반의 도시 춘천
사장님은 자신있게 말했다. “술은 물맛에 좌우돼. 그런데 춘천은 어느 지역보다도 물이 맛있어. 여긴 강의 상류거든!” 그러면서 우리를 이끌고 수돗물이 나오는 야외 수도꼭지로 데려갔다. 사움실에서 종이컵을 하나씩 나눠주며 마셔보라고 했고 이내 한 모금 했는데 웬걸. 서울에서 마시던 수돗물은 약품 냄새가 입안 가득했지만, 춘천의 수돗물은 깔끔하고 달았다. 호반의 도시는 역시 호반의 도시다. 이런 물로 막걸리를 빚으니 술 맛이 좋을 수밖에!
온도 유지의 비결은 왕겨
맛좋은 물을 한잔씩 들이키고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 안은 후끈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열 보존의 비밀은 바로 ‘왕겨’. 왕겨는 쌀겁데기로서 벼를 도정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50여년 전 공장을 지을 때 벽면 안에 왕겨를 넣어 보온재로 사용했단다. 공장을 인수하고 얼마 안 있어 벽을 터보니 왕겨가 우수수 쏟아졌다고! 맛있는 막걸리를 빚기 위한 조상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DIY 누룩
공장 내 가지런히 놓인 판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이 판에 담긴 것은 입국! 춘천양조장은 직접 입국을 직접 제조한다. 보쌈방식과 입상방식을 사용하는데, 2~3일이 소요된다고. 입국을 직접 만든다는 사장님의 어깨는 자부심으로 으쓱했다.
주민들과 호흡하는 양조장
양조장 사무실의 바깥 벽면에 눈길을 사로잡은 액자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종이 적힌 시였다. 인접한 아파트에 시인이 거주하는데, 단골이란다. 막걸리를 마시고 기분이 한층 업된 나머지 한 구절 써서 사장님에게 선물로 줬다고. 이 광경이야말로 사장님의 철학 ‘술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골라서 마시는 막걸리3
단골들이 찾는 춘천생막걸리. 밀을 원료로 묵직한 바디감이 특징이다. 왕수 生 쌀막걸리. 가벼운 맛을 찾는 최근 트렌드에 맞게 쌀을 원료로 만들었다. 왕수라는 뜻은 왕에게 바치는 술이라는 의미로서 그만큼 정성들여 만들 의지를 표현한다고 한다. 춘천수제막걸리. 쌀과 밀의 적절한 베이스와 막걸리 명인이 직접 공들여 만든 고급 막걸리다. 2023 막스포 행사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특히 2030 젊은 여성분들의 선호가 뚜렷했다고. 한편 이 막걸리들이 시중 막걸리들과 구별되는 점은 사장님의 임상(?)을 거쳐 첨가물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사장님은 다소 예민한 장을 가지고 있어 시중 막걸리를 마시면 항상 탈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흔히 들어가지만 배탈을 유발할 수 있는 첨가물들을 빼고 올리고당 정도를 넣어 본인이 속편하게 마실 수 있는 막걸리를 개발했다.
막걸리를 맛있게 즐기기 위한 전무님의 팁
춘천양조장에서 나온 막걸리들은 출고된 지 5~10일이 지난 후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유통과정 중 숙성발효가 될 가능성을 고려해 출하 시 물을 조금 더 첨가하기 때문에 살짝 밍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生 막걸리를 사갔지만 금방 변해버려 아쉬웠던 사람들을 위한 팁을 전무님의 말로 표현해본다. “김치 냉장고에 넣어놔봐. 막걸리가 꽤 길게 갈 거야!” 이 막걸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를 묻는 질문엔 닭갈비의 고장 춘천인 만큼 닭꼬치를 추천했다. 그런데 가장 의외의 답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아스파라거스 알지? 스테이크 먹을 때 한 두 점 나오는 거. 춘천이 아스파라거스가 유명해. 그래서 서울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할 거야. 아스파라거스를 버터에 구우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올라오는데, 이거를 막걸리와 함께 즐기곤 해”
모범시민 모범 막걸리
사무실동에 옹기종기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벽면에 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모…범…시…민?’ 사장님께서 서울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아래층에서 불이 났는데 앞장서서 빠르게 불을 진압했다. 이에 대한 공로로 상패를 수여받은 것! 사라져가는 춘천양조장을 인수해 막걸리의 명맥을 잇고 정도를 걸으며 막걸리를 빚는다는 얘기를 듣고 뭐든지 정도를 걷는다는 이 양조장의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향토 사랑에 대한 아쉬움
과거 지역 판매 제한으로 특정 지역의 막걸리는 특정 지역에서만 소비됐다. 이 정책으로 인해 지역 내 생산 막걸리 소비율이 높은 편인데, 춘천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전무님의 얼굴에 아쉬움이 역력했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외지인의 비율이 높다는 게 사장님의 설명이다. 춘천은 강의 상류에 위치해 있어 산업 도시의 면모보다는 소비 도시의 면모가 크다. 도시 규모에 비해 대학교가 많다. 도청 소재지 특성상 공무원이 많다. 또한 전방 지역인지라 군인들도 많다. 그래서 토박이들이 많아 주민들의 애향심이 깊은 다른 지역과 달리 향토 사랑에 대한 정도가 다르다고. 이런 이유로 막걸리도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평과 서울 장수 막걸리를 많이 마신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겠어. 우리가 열심히 해서 바꿔봐야지”하는 웃으며 말씀하시는 걸 보니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춘천은 역시 닭갈비
춘천양조장에서 정신없이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춘천에 왔으니 역시 메뉴는 닭갈비다. 춘천에 여행을 갈 때면 신북읍 소양강변에 위치한 닭갈비집들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여행맛집은 뭐니뭐니해도 현지인이 자주 가는 곳 아닌가? 전무님의 추천을 믿고 춘천양조장에서 차로 3분 남짓한 곳에 ‘학곡리 막국수 닭갈비’라는 곳으로 향했다. 주차장은 이미 꽉 차있어 천변가에 주차를 하고 와야 한단다. 차를 대고 서둘러 입구로 달려갔지만 역시 웨이팅. 15분쯤 지났을까 우리의 이름이 호명되고 입장했다. 식당은 바글바글했고 이를 응대하는 점원들은 능숙하게 주문을 받고 닭갈비를 구워줬다. 서울에서 먹던 닭갈비의 육질은 약간 푸석푸석한 감이 있는데, 이곳의 닭고기 육질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연한 살코기를 씹자면 저작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몇몇 테이블은 막걸리를 주문해 닭갈비를 먹고 있었는데, 춘천양조장 사장님 말처럼 서울장수와 지평막걸리만 보였다. 점원분께 “다른 막걸리는 없어요?”라고 물었고 “옥수수 막걸리 있어요”라는 대답에 얼른 옥수수 막걸리를 시켜 마셔봤다. 강원도 동해의 낙천양조장에 만든 지장수 막걸리였다. 옥수수분말이 들어가 있었지만 옥수수의 향이 그리 세진 않고 은은하게 코를 감싸는 맛이었다. 한국인의 디저트는 여기 탄수화물. 야무지게 밥까지 볶아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춘천의 짐빠(?) 세계주류마켓
춘천에 이런 곳이? 세계 방방곡곡에서 들여온 술(와인, 샴페인, 위스키, 고량주, 사케 등)이 있는 곳이라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겉으로만 봐도 엄청난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실내로 들어가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이 떡 벌어지는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다. 벽면을 가득채운 술들. 생전 처음 보는 술들에 호기심 어린 우리의 시선이 꽂혔다. 누군가는 여자친구와 함께 마실 술을 카트에 잔뜩 담고,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기 위해 강원사랑상품권을 구매하고, 누군가는 술이 아닌 안주를 담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주류마켓을 즐겼다. 비밀의 방처럼 생긴 문으로 들어가보니 숨겨진 길이 나왔다. 이를 따라가보니 진짜 ‘비밀의 방’이 나왔다. 마치 테일러샵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과 분위기. 소중하게 보관하는 듯한 술들의 진열. 멀리서 봤을 땐 위용이었으나 가까이서 가격표를 봤을 땐 경악이었다. “이 와인이 100만원?” 누가 마시냐. “이 와인이 300만원? 너무 비싸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 와…. “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깨질까봐 손도 뻗지 못한 이 술을 누군가는 사가겠지??
핫플이 되고픈 우리가 핫플을 들러보자
짐빠 예약손님을 받기 위해 서둘러 돌아가기로 했다. Door는 오랜만에 밤낚시를 하고 싶다며 홀연히 속초로 떠나버렸고 나머지는 서울로 운전대를 돌렸다. 서울로 향하던 길에 마침 핫플(?)이 있었고 그곳에 잠시 정차해 빠르게 포장해가기로 했다. 감자밭. 강원도의 특산물 감자로 빵도 만들고 라떼도 만들어 판매하는 곳. 유퀴즈에 출연한 사장이 운영하는 카페이다. 핫플레이스 답게 수많은 인파로 바글바글. 서울에서 먹으려고 감자빵을 포장했다. 입가심으로 감자라떼를 먹으려고 했으나 10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에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출구로 나오는 길 줄이 길게 늘어선 가게를 보며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운전하는 길에 감자밭이 떠올랐고 한 마디가 떠올랐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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