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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bba day _ 짐빠의 시작, 봉양 양조장

by Jimbba Door


제천 봉양읍에는 작은 양조장이 하나 있다. 간판엔 '양조장 방앗간', '봉양양조장'이라고 쓰여있는데 아무리 봐도 양조장처럼 안 생겼다. 동네 슈퍼나 문구점처럼 생겼다. 안에 들어가보면 떡, 참기름을 짜는 기계만 보일 뿐 양조설비는 안 보인다. "여기 술 팔아요?"라고 여쭤보면 출입문 옆 쇼케이스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주신다. 전에 다른 막걸리 양조장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쇼케이스 냉장고 옆의 자그마한 방에 놓여있는 커다란 기계를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양조장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친구들과 놀러간 제천에서 우연히 들른 이 곳이 살면서 처음으로 방문한 막걸리 양조장이었다. 그런데 양조장보다 방앗간에 가까운 듯한 이곳에서 빚는 박달재 막걸리는 의외로 놀랄만큼 맛있었다. 숙소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 사온 막걸리들은 동이 나버려서 후발대로 오는 친구들에게 오는 길에 봉양양조장에 들러서 막걸리 좀 더 사다달라고 해야 했다. 덕분에 박스채로 준비했던 소주와 맥주는 그대로 남겨왔다. 다른 양조장의 술들은 어떨지 궁금해져서 이후부터는 여행을 가면 근처의 양조장을 검색해보고 찾아가서 술을 사다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곳이다.


Jimbba Day - 봉양


그 때는 8월말임에도 너무나 선선하고 쾌청한 날이었던 반면에 오늘은 좀 꾸리꾸리하고 쌀쌀했다. 하지만 날씨만 빼면 거의 4년만에 향한 봉양읍은 별로 달라진 점은 없어보였다. 대략 20명이 먹고 마실 음식과 술을 사오느라 박스 몇 개 분량의 장을 봐서 나왔던 하나로마트도 그대로이고, 계곡에서 피라미를 잡아보겠다고 피리통을 샀던 작은 슈퍼도 그대로였다. 변함없이 그대로인 모습이 반가웠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읍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대고 1분 거리에 있는 봉양양조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훈훈한 온기와 떡과 참기름의 꼬수운 냄새가 느껴졌다. 이모님들께서 평상에 앉아 TV를 보면서 나물을 다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 할머니집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정겨웠다.


양조장 안쪽은 떡 빚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기 때문에 사장님께서는 우리를 양조장 옆 편의점으로 안내해주셨다. 다방에라도 데려가서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 곳엔 어르신들이 많아서 편히 얘기를 나누기 위해 편의점으로 장소를 정하셨다. 사장님도 50대이시지만 이 동네에서는 벌써 30년 전부터 막내로 지내고 있다고 하신다.


봉양양조장은 1940년대에 사장님의 할아버지께서 현재 양조장 자리에 양조장을 설립 하셨다고 한다. 당시에만 해도 우유차 같은 큰 탱크로리에 막걸리를 싣고 나가서 빵빵거리면 주부들이 말통을 가지고 나와서 술을 받아가셨다고 한다.


옛날에 양조장 사업은 지역 유지들이 합자 형태로 사업을 많이 했다. 그만큼 자본이 많이 필요하지만 수익도 좋은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30~40년 전에는 시골에서 양조장집과 방앗간집 아들은 아무도 무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제천에는 양조장이 3군데 정도 남아있다. 백운양조장, 봉양양조장, 금성양조장인데 재밌는 점은 백운양조와 봉양양조 둘 다 박달재막걸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제품은 다르지만 상표만 같다. 박달재가 지명이기 때문에 상표권 등록을 할 수 없어서 생긴 해프닝이다. 사장님들끼리 친분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로 인한 다툼은 없었다고 하신다. 다행히 병 색깔이 달라서 흰색 병의 박달재막걸리를 구하러 온 사람에게는 봉양을, 초록색 병의 박달재막걸리를 구하러 온 사람에게는 백운양조를 알려준다고 하신다.



현재의 박달재 생막걸리라는 이름을 쓴 지는 20년 정도 되었고, 원래는 ‘봉양막걸리’라는 약 60년간 지역에서 유통되어왔다. 그래서 지금도 동네 어르신들은 박달재막걸리가 아닌 봉양막걸리라는 이름으로 이 술을 찾는다고 하신다.

박달재 막걸리도 과거에는 누룩을 써서 빚었지만, 현재는 입국과 효모를 써서 빚어진다. 젊은 사람들이 누룩에서 나는 쿰쿰한 향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장님께서 직접 레시피를 바꾸어서 빚기 시작하셨다.


막걸리를 빚을 때 들어가는 쌀은 떡을 빚을때 쓰는 것과 같은 것이 사용된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도 제빵실과 양조실이 바로 옆 방에 만들어두고 밀가루와 효모를 같이 사용했던 것이 떠올랐다.

지금은 방앗간이 본업이고 양조장은 부업이다. 둘 다 본격적으로 하기에도 여력이 안되고, 양조는 대기업과의 유통 경쟁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걸리는 양조장에 찾아와서 찾는 사람에게만 판매하거나 미리 주문을 받아서 빚는다. 인근 마트에서도 구할 수 없다. 양조장에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로 주문하면 택배로 받을 수 있다.

급하게 편의점에서의 자리를 정리하고 양조장방앗간으로 가니 사장님 부부께서는 배달나갈 떡을 뽑을 준비하느라 바쁘셨다. 양해를 구하고 양조장 안쪽을 조금 더 구경한 후 서울로 가져와서 마실 박달재막걸리와 원주를 사서 나와야했다. 언젠가 나중에 박달재막걸리 레시피를 배워서 신당에서 만들어 볼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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