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imbba Door
남도가양주는 전집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양조장이다.
"처음 막걸리 공부를 시작할 때만해도 이 자리에 양조장을 차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오랜 세월 목포에서 음식점을 해오신 모친의 전집에 납품받던 막걸리의 거래가 끊기자 '직접 막걸리를 만들어볼까?'라는 명쾌한 동기로 신태민 남도가양주 대표는 막걸리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렇게 전통주 양조에 입문하여 술 빚기를 준비하는 사이에 모친께서 가게를 정리하기로 하셨다 그래서 그 자리에 그대로 기존 모습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직접 1개월 가까이 리모델링 공사를 하여 양조장을 차리게 되었다.
남도가양주만의 유니크한 키워드를 꼽는다면 아마도 <석탄주>일 것이다.
'향기가 기특하여 입에 머금으면 삼키기가 아깝다'며 아낄석(惜), 넘길탄(呑)이라는 의미를 가진 술이다. 술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입 머금어보고픈 욕망을 자아내는 매혹적인 이름이다. 소주병을 세지 않고 마실만큼 애주가였던 신태민 대표도 그랬다. 전통주를 연구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석탄주는 도대체 어떤 술일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고, 곧바로 석탄주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석탄주는 기대만큼이나 매력적인 술이었다. 사과, 포도, 멜론의 과실향이 우아하게 피어나면서 입 안에 찰지게 감기는 달짝지근한 맛과 풍미에 반해버렸다. 석탄주 레시피를 베이스로 막걸리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찰진'은 그렇게 탄생했다.
석탄주의 찰지게 감기는 느낌에서 힌트를 얻어 '찰진'이라고 이름 지었다. 프로토 타입은 석탄주 원형을 살려 찐득하고 묵직하게 만들었으나, 보다 가볍게 편히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이후 여러 차례 레시피 수정을 거쳐 과실향은 충실히 살려내면서 실키한 질감으로 미끄럽게 넘어가는 목 넘김이 매력적인 지금의 찰진을 완성했다.
신태민 대표의 놀라운 점은 처음 술 빚기를 공부한 때부터 지금까지 오직 석탄주만 빚어왔다는 점이다. 대개 양조를 막 배운 사람들은 한 가지 레시피의 술을 여러 번 만드는 일이 드물다. 재료 구성을 달리 해본다던가, 꽃이나 과일 같은 부재료를 넣어본다던가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술을 만들다보면 같은 레시피의 술을 10번은 커녕 3번도 못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고수들은 초짜들에게 '100가지 술을 한 번씩 만들기 보다는, 한 가지 술을 100번 만들라'는 충고를 하곤 한다. 그런데 신태민 대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석탄주만 바라보며 석탄주만 만들어왔다고 하니 진정한 석탄주 덕후이자, 어쩌면 석탄주 장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더군다나 석탄주는 죽을 쑤어 밑술을 하기 때문에 수분이 많아 오염되기도 쉽고 저어주는 것도 힘이 들어 다른 술보다 품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수고를 감수하고 꾸준히 빚어 온 우직함과 정성이 있기 때문에 뛰어난 술이 만들어진듯 하다.
라벨에도 술에 대한 고민과 진심이 담겨있다. 찰진 로고 배경의 동그라미는 항아리를 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의 모습을 시각화한 것이다. 라벨 뒷면의 파스텔톤 동그라미들은 발효 중 떠오르는 기포를 표현했다. 색깔을 달리 한 이유는 찰진 막걸리에서 피어오르는 다양한 맛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한다. 화학과를 전공했던 것이 양조를 공부할 때는 많은 도움이 되어줬지만 디자인에는 경험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만들어낸 진정성이 느껴지는 라벨이다.
신태민 대표는 찰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로 김치만두를 추천한다. 원래 만두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퇴근 후 찰진과 함께 김치만두를 자주 페어링해서 즐긴다고 한다. 찰진의 감미로운 단맛이 매운맛과 합이 좋기 때문에 두부김치, 매운닭발과 같은 메뉴와도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찰진은 병입일로부터 1개월 이상 된 것을 좋아한다. 막 출고된 찰진의 풋풋한 식혜향도 기분 좋지만, 숙성된 찰진은 부드러운 과실향과 감칠맛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찰진을 마실 땐 '웃주(막걸리를 흔들기 전의 맑은 윗술을 가리키는 전라도 방언)'를 조심히 따라내어 한 잔 먼저 들이켠 후 앙금을 흔들어 마시길 추천한다. 석탄주가 원래 청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꺼내어 바로 마시기 보다는 10~20분 정도 상온에서 살짝 온도를 높여 향기 분자를 활성화시킨다면 더욱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다.
곧 목포를 여행할 애주가에게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다. 올해말이나 내년초 목포에서만 판매할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음으로 한 잔 주신 신제품은 찰진과 닮았지만 더 깊고 풍부하면서도 또 다른 캐릭터를 가진 근사한 술이었다. 명절마다 목포에 들러야할 이유가 생긴 것 같다. 정식으로 출시 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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