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bba Ko
주방에 있던 유리병 하나가 깨졌다. 짐빠를 시작할 초창기 동생이 인기 많다며 사줬던 막걸리 병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양조장이 다시 기억에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짐빠 정기 회의 날이었다.
짐빠의 사랑, 어나더언니가 계셨다. 회의 시간이 다 되어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꽤나 심각했다. 어나더 언니는 연애상담을 해주는 듯 했다. 삼공이와 함께 시장 인근을 한 바퀴 돌고 오니 손님들이 떠날 채비를 하고 계셨다. 어나더 언니는 친구분들과 짐빠 맞은편에 있는 식기 가게인 ‘한일주방’에서 팝업을 하기로 약속하며 떠나셨다. 그 팝업을 위해 새로운 종류의 술을 만드시기로 했고, 짐빠는 베이스캠프가 되기로 했다고 했다. 심각하게 연애 상담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팝업이라니. 몇 년 전 을지로에 있는 ‘솔다방’에서 디자이너 언니 오빠들이 팝업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이쁜꽃 양조장’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나더언니와 함께 동행 하셨던 분이 ‘이쁜꽃 양조장’의 대표님이셨다고 한다. 출시할 술을 시음 차 가지고 와주셨다고 한다. 대표님의 남편은 사케에 조예가 깊은 분이라고 하였다. 연애상담을 받던 이들은 오늘 처음 만난 옆 테이블 손님들이었다고 한다. 역시 짐빠는 예상치 못한 인연이 만나는 곳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우리는 짐빠 데이에 ‘이쁜꽃 양조장’을 가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양조장을 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충무로에 있다고 했다. 을지로에서 8년 남짓 있으며 중구문화재단의 일에 한 발을 걸치게 되었고 전통술에 관련된 스타트업이 명동 인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곳이 그곳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전에 그 얘길 들으면서도 양조장이 충무로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짐빠데이.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동생의 결혼식을 포기하고 ‘이쁜꽃 양조장’으로 향했다. 분명 자주 지나다닌 충무로 거리였다. 알고 보면 보인다고 건물 외벽에 ‘이쁜꽃 양조장’을 상징하는 얼굴 그림을 발견하였다. 그렇게 2층으로 올라가니 복도 한켠에 쇼파가 보였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하였기에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은은하게 술 익는 내음이 났다. 잘 찾아온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일찍 가서 혼자 있으면 부끄러우니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복도 끝에서 진주 목걸이를 한 여성분이 성큼성큼 걸어 나오셨다.
눈이 마주치고, 다시 마주치고 “짐빠에서 오셨나요?”를 물어주셨다. 부끄럽지만 용기 내서 “네..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미소 지으시며 안쪽에 들어와 있어도 된다며 안내해 주셨다. 복도 제일 안쪽에 다다르니 206호가 있었다. 문 앞에 ‘당신의 마음의 형태를 조망해 보세요.’라는 안내와 16개의 보기, 그리고 마음의 문제라고 쓰인 종이가 ‘LOVE’라고 쓰인 종이테이프에 의지해 붙어 있었다.
‘아.. 여기 그냥 술만 만드는 곳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싶어졌다. 어떤 분들이신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으시고, 그만큼 술에 대한 애정이 많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도는 80년대였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2023년이었다. 목재와 폴리카보네이트로 매끈하게 만든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카운터 위엔 이쁜꽃 술병과 사케병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중세 시대 어느 유럽의 도시 같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술 수령하는 분들이 오시는 날이라 안쪽에서 이야기 나눠야 할 것 같아요. 조금 번잡해도 이해해 주세요.”라고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네, 좋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안쪽은 뭐가 있는 곳인지, 술을 수령한다는 건 뭔지 알지 못했다. 공간을 구경하고 있으니 곧 M이 도착했다. 오면서 술 내음을 맡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얼굴이 편해 보였다. 곧 안쪽으로 안내 해주셨다. 들어가 보니 고운 아이보리빛 타일로 마감된 연구실이 있었다. 여태껏 많은 양조장을 다녀본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이쁜 양조장이었다. 원래는 이곳을 양조장으로 사용하려 하셨으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연구실로만 쓰고, 양조장은 마포에 만들게 되었다고 하셨다. (여기서 현실적인 어려움이란…🤫)
자리에 앉으니 이쁜 잔 두 개를 꺼내 주셨다. 그땐 몰랐다. 오늘 이 잔으로 얼마나 많은 술을 마시고 가게 될 줄… 곧 1.8L 웅장하고 아름다운 술병을 가지고 오셨다. 이 술이 ‘황새’라고 하셨다. ‘서천 옥순가’와 콜라보로 만든 술이라 하셨다. 한 잔을 마시고 너무 행복했다. 너무 맛있었다. 술병도 큼직하고 맛도 이리 좋다.. 동생에겐 미안하지만 오늘 결혼식을 안 가고 이곳에 온 것에 감사했다.
흰 티에 양복 입은 남성분이 들어오셨다. 대표님은 “이분이 이과장님이세요.”라며 소개해 주셨다. 두 분이 일하신다는데 한 분은 대표시고, 한 분은 과장님이라니.. 그 의문은 후에 이쁜꽃 인스타를 보고 풀리게 되었다. 보통 반려견, 반려묘와 함께하는 곳들은 자신의 이쁜 자식들의 이쁨과 귀여움을 모아 홍보물을 만들고 마케팅을 하곤 한다. 삼공이와 함께 사는 반려 놈으로서 100% 그 마음을 이해한다. 예술가들 중에서도 종종 그런 케이스가 있긴하다. 뿌리작가는 자신의 고양이가 슈퍼스타가 되었으면 하는 맘으로 혼심의 힘을 다해 반려묘를 주인공 삼아 작업 한다. 여튼 이쁜꽃에선 이과장님이 그 역할을 하고 계셨다. 반려인으로 사케 요정이 되어 마케팅의 최 전선에 자신을 내어 놓으셨었다.
황새의 맛에 감동이 밀려올 때 이과장님께서 사케를 한 병 꺼내 주셨다. 사케는 익숙치 않았다. 마실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과장님께서 따라주신 사케를 코와 입에 가져다 놓으니 사케란 녀석이 너무 좋아졌다. ‘황새 맛’에 ‘사랑과 용기의 맛’에 ‘사케’들의 맛에 빠져 행복해 하고 있는 찰나 부터 손님들이 계속 왔다. 그제서야 술 수령한다는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날은 ‘황새’를 주문한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날이었다. 인스타를 통해 미리 예약한 사람들이 와서 사 갔다.
사람이 끊임없이 계속 왔다. 두 분은 바빠지셨고, 빈 공백만큼 술로 채워주셨다.
몇 잔을 기울였을까 손님이 좀 뜸해졌다. 이과장님은 계속 챙기실 거리가 있으신듯 했지만 대표님께서는 여유가 조금 생기신것 같았다. 어떤 서사를 가지고 계신 분일지 궁금했다. 진주 목걸이, 마음의 문제, 이과장님, 사케, 계속해서 오는 손님들. 대표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실까.
처음 양조를 하게 된것은 ‘곰 세마리 양조장’에서 부터라고 하셨다. 그때는 미드를 만드셨다고 한다. 처음으로 4만원대를 받는 한국술을 만드셨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한국술은 저렴한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지금도 짐빠에 오시는 어르신들의 경우 막걸리가 왜 이리 비싸냐, 소주가 왜 이리 비싸냐며 불평을 하시고 가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물며 그런데 술은 당연이 2000원 내외로 마시는 것일 일반적이었을 때 오죽했을까. 시스템을 만들고 마케팅을 해나가는 우여곡절 끝에 투자를 받아 더 큰 기회를 꿈꾸게 되기도 하셨다고 한다.
후에 ‘곰 세마리 양조장’은 동료들이 계속 운영하였고 대표님은 구루마 양조장에 가게 되셨다고 한다. 그곳에서 처음 쌀로 술을 빚기 시작 하셨다고 한다. 이후 이쁜꽃 양조장을 세우게 되셨다고 한다.
사케가 양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했다. 일본엔 다양한 양조 기법이 남아 있고, 90세의 명인도 은퇴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채 술을 빚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런 연유로 사케를 가까이하면서 술맛의 깊이의 기준을 잡아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대표님께서는 돌아보면 전통주라는 영역 안에서 반항아 같은 역할을 많이 해오신 것 같다 하셨다. 계속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고 해나가는 시도들이 때론 ‘전통’이라는 이름과 결이 맞지 않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국악도, 한국화도 모두 전통의 뿌리를 둔 것들이지만 식민지를 거치고 군사독재를 거치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나가고 있다. 지금 시대에 겪어나가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제를 각자의 고민들로 풀어가는 과정을 겪어주시는 많은 분들께 다음 세대는 빚을 지게 되겠지.
황새는 앞서 이야기 한 데로 서천 옥순가와 콜라보 해서 만들어진 술이었다. 70~80병만 생산되었다는 대표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다급하게 했다. 이 맛난 술이 세상에 그 정도 뿐이라니. 어떤 연유로 서천 옥순가와 함께 하셨는지를 여쭈었다. “술맛이 좋아서.”라는 짧고 명쾌한 답을 주셨다. 당연한 일이었다. 황새는 소곡주로 분류되진 않는 마주라고 소개를 해주셨다. 술은 개봉한지 얼마 안 되었을땐 곡물향이 풍성하다. 한잔 한잔 술이 빌수록 병 안으로 채워지는 산소 덕분에 술은 점점 더 익어간 다고 한다. 때문에 다른 향을 느끼며, 익어가는 술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1.8L의 용량을 보니 하루하루 익어가는 술의 낭만들 즐기는 저녁 있는 삶의 여유로움을 상상하게 되었다.
요즘 소곡주 문화가 부흥하는 중이라고 한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1.8L의 큼지막한 술병만 보아도 소곡주라는 것을 아신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아직 생소한 술이 되었지만 최근 다시 소비가 늘고 있다고 한다. 듬직한 술병을 친구들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그 주인공이 내가 되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양조장을 나서기 전 마지막 관문이 남았었다. 바로 막걸리 빚기. 단발머리의 M과 민머리의 K가 마주 서서 촉촉한 볼에 손을 넣고 재료들을 배합하였다. 은은한 술 향이 났다. 대표님께선 술을 빚을 땐 쌀알 한 알 한 알을 예뻐해야 한다고 하셨다. 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쌀과 건포도 누룩과 입국, 그리고 수많은 미생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 막걸리 한잔하고 싶어진다. 오늘 귀한 시간 내어주신 대표님과 이과장님께 깊은 감사를 전하며. 이쁜꽃 양조장 기행문은 여기까지! 이제 ‘황새’ 한잔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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